금구 용화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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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운산 종도사님 제2변도운 개척지로 해방 후 대법사 활동을 하시던 안운산 종도사님이 사재를 들여 마련한 이곳에서 단독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수십여 만명의 신도를 확보하여 증산도 제2부흥기를 열었다.
신도수가 많아지자 이상호씨가 욕심을 내 ‘금산도득’을 주장하며 용화동의 성역화를 위한 모금을 강행하자, 안운산 종도사님은 ‘대휴게기’를 선언하고 기나긴 20년 은둔의 세월로 들어가신다. 2변과 3변이 갈리는 분기점이 바로 이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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